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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리뷰]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그래픽 디자인편)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그래픽 디자인편)

 

 


 

 

마이클 비에루트, 2013 _모호크 사의 로고

색 겹치기 - 1 더하기 1은 '많다'

오랫동안 디자이너들은 CMYK 컬러의 혼합으로 열린, 수많은 색채의 가능성을 탐험하면서 색 겹치기를 시각 효과의 하나로 사용해왔다. 색 겹치기는 20세기 중반 모더니즘 그래픽 디자인에서 동 시대성을 표현하는 흔한 방법이었다.

마이클 비에루트가 디자인한 고급 종이 제조업체 모호크 사의 2013년 로고는 글자 M으로 둥글게 말린 종이의 움직임을 기발하게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투명한 색들을 서로 겹치게 하는 현대적인 기법으로 이것을 강조한다. 

 

얀 치홀트, 1937 <구성주의들> 포스터

여백 - 페이지를 해방시키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이다'. 여백의 활용에 관한 이 말은 그래픽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19세기 잡지와 신문의 조판공들은 모든 공간을 활자나 이미지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광고와 기사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자, 비로소 프레임 역할을 위해 여백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 여백을 유용한 요소로 여기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얀 치홀트가 1937년에 디자인한 바젤 쿤스트할레의 전시 포스터는 여백을 우아하고도 기능적으로 사용한 예다. 이 작품은 당시 그래피 디자인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안톤 슈탄코프스키, 1972 <화살표:게임,상징,소통>

개념적 디자인 - 아이디어가 형태를 이끌 때

개념적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이다. 달리 말하면 개념이 디자인의 외양을 좌우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형태와 내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할 아이디어 단계에서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혹은 반대로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개념적 디자인을 하려면 각각의 디자인 요소들-서체, 이미지, 레터링-을 겹집 하여 조화로운 결과를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의 요소만으로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독일의 디자이너 안톤 슈탄코프스키가 후퇴하는 화살표들을 모아 만든 전진하는 화살표. 화살표는 행동을 지시하는 강력한 상징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즉각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AG 프론초니, 1979 <미켈레 스페라> 포스터

단순성 - 적을수록 좋다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를 제거하면 다른 시각적 요소가 가리키는 핵심적인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아르 누보가 유행했던 과도하게 양식화된 장식의 시대에 뒤이어 192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된 미학 사상이다. 모더니즘의 모토는 '적을수록 좋다'이다.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이 말은 20세기 초반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생, 1964 <대머리 여가수>

내러티브 - 시각적으로 표현한 스토리텔링

모든 레이아웃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활자와 이미지 등 시각적 전달 요소들을 조절하여 보는 사람이 하나의 장면, 개념, 생각에서 또 다른 장면, 개념, 생각으로 직간접적으로 이동하게 만들 수 있다. 독자가 마음대로 속도를 내거나 줄일 수 있는 운전사라면, 디자이너는 활자와 이미지의 크기, 비율, 양식이라는 형태로 과속 방지턱과 교통 신호를 만들어 독자를 인도한다.

가장 좋은 예는 책과 잡지 등의 인쇄 매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여정이다. 웹페이지와 앱도 마찬가지로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를 활용하여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는 훨씬 더 큰 플랫폼이다.

레이아웃을 통한 내러티브의 강화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마생의 작품의 핵심이다. 말과 그림을 강렬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통합시켜 독자가 글을 따라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오네스코의 연극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이클 슈와브, 1995 <더 게팅 플레이스>

분위기 - 완벽한 균형이 만드는 뉘앙스

분위기는 뉘앙스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뉘앙스는 우리의 인지를 작동시키는 미묘한 시각적 표현들을 가리킨다.

수잔 스트레이트의 <더 게팅 플레이스>는 미국의 인종 폭등, 폭력이 삼대에 걸쳐 한 가문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소설이다. 마이클 슈와브가 1955년에 디자인한 이 책의 표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배경을 채운 진한 빨간색은 극적인 플롯을 암시하고, 검은색의 인물들은 어두운 과거에 빠져 이는 가족을 상징한다.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자세, 모호한 레터링 등의 시각 요소들은 슬픔을 암시하면서도 구성 자체는 아름답다.

 

 


어마어마하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다. 예상과는 달리 고갈된 아이디어를 위로하거나 경로를 제안해주는 책은 아니고 디자인적 표현 기법과 그 시작이 어디 서부 터였는지에 대한 책이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혹은 배우지 않아도 어디선가 많이 본 표현 기법들이라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들고, 수많은 작품들의 기반이 된 작품들을 보면서 아, 그러네~! 하며 맞장구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파트별로 한 장 분량의 설명글과 예시 이미지로 가볍게 읽기 좋고, 종이가 두꺼워서 넘기는 재미도 있다.